밀가루 담합에 역대급 과징금, 왜 공정위가 20년 만에 가격 재결정까지 꺼냈나

한 번 해봐서 아는데, 먹거리 가격 담합은 체감이 바로 온다

한 번 해봐서 아는데, 장바구니 물가라는 건 숫자보다 체감이 먼저다. 라면 한 봉지, 빵 한 조각, 국수 한 그릇이 조금씩 비싸질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그런데 그 뒤에 공급망 상단에서 가격을 짜맞추는 담합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국 부담은 소비자와 자영업자, 그리고 원가를 떠안는 중소 업체로 내려온다. 이번 밀가루 담합 사건이 딱 그런 그림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7개 제분사가 약 6년에 걸쳐 밀가루 판매가격과 물량을 담합한 혐의에 대해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가 아예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꺼낸 걸 보면, 이번 사안을 단순한 법 위반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흔든 중대 사건으로 본다는 뜻이다.

시장점유율 87.7%의 과점 구조가 왜 문제였나

핵심은 시장 구조다. 이 7개사는 국내 B2B 밀가루 시장에서 2024년 매출액 기준 87.7%를 차지했다. 사실상 과점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가격이 쉽게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적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공급선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이 구조가 담합에 취약한 이유다.

공정위가 밝힌 내용을 보면 이들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총 24차례에 걸쳐 담합을 진행했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거래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였다. 숫자만 봐도 반복성이 뚜렷하다. 우발적인 일탈이 아니라 계획된 공동행위로 읽힌다.

이 사건이 더 뼈아픈 이유는 이미 한 차례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2006년에도 밀가루 담합으로 공정위 제재가 있었고, 그런데도 다시 같은 방식이 반복됐다. 한 번 걸렸는데도 또 했다는 건, 내부적으로 리스크보다 이익이 더 크다고 계산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런 판단이 시장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는 업계에 오래 있으면 다 안다.

6년 동안 55번 모여 짠 합의, 원가 하락기엔 왜 더 느렸나

공정위는 이들 업체가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을 총 55회 열어 합의를 구체화했다고 봤다. 영업본부장 이상이 큰 틀을 잡고, 영업팀장 등 실무자가 세부 조율을 하는 방식이다. 이 정도면 그냥 가격을 맞춘 수준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고 보는 게 맞다.

원재료인 원맥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도 악용됐다. 원맥 시세 상승기인 2020년부터 2022년 사이에는 원가 상승분을 빨리 반영하려고 인상폭과 시기를 맞췄고, 반대로 2023년 이후 하락기에는 인하 반영을 최대한 늦췄다. 이런 행태는 시장원리와 정반대다. 원가가 오르면 바로 올리고, 내릴 때는 버티는 방식이니 소비자만 손해를 본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 대비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이 수치는 그냥 가격표 숫자가 아니다. 라면과 빵, 과자, 국수 같은 생활필수품의 원가를 밀어 올리는 압력으로 이어진다. 결국 downstream 가격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 담합 기간 중 가격 상승 폭

제분사별 최소 상승률 ■■■■■■■■■■■■ 38%
제분사별 최대 상승률 ■■■■■■■■■■■■■■■■■■■■■■■■■■■ 74%

과징금 6710억4500만원, 숫자보다 무거운 건 ‘재발’이다

이번 과징금은 6710억4500만원이다.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을 약 5조6900억원으로 잡았다. 법상 담합 관련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으니, 이론상 더 큰 금액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최대 1조1600억원까지도 거론된다. 다만 최종 제재 수위는 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구분 내용
담합 기간 2019년 11월~2025년 10월
담합 횟수 총 24차례
회합 횟수 총 55회
시장점유율 87.7% (2024년 매출액 기준)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
관련 매출액 약 5조6900억원

공정위가 이번에 특히 강하게 나간 건 재발 가능성 때문이다. 이미 2006년에 제재를 받았는데도 다시 담합을 했고, 정부가 물가 안정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급한 시기에도 행위가 이어졌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보조금 471억원을 받는 동안 담합이 계속됐다는 건, 공공의 돈으로 시장 안정 효과를 기대하는 틈을 이용한 셈이다. 이건 그냥 배짱 문제가 아니라 윤리 문제다.

“밀가루와 같이 국민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의 가격 등을 놓고 이뤄지는 담합에 대한 감시를 보다 강화하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엄중히 제재해 나갈 계획이다.”

가격 재결정 명령이 왜 중요하냐면,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다. 담합 이전 수준으로 가격을 다시 산정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인데, 밀가루 사건에서는 2006년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되는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도 가격 재결정명령 이후 약 5% 가격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공정위가 단순 과징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이유가 여기 있다.

또 하나는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한 점이다. 그냥 벌금 내고 끝나는 구조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이런 후속조치가 실제로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과징금은 아프긴 하지만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다. 반면 보고명령과 가격 재결정은 행동 자체를 바꾸게 만든다.

사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제분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가를 올리는 상위 공급망에서 담합이 발생하면 제과, 제빵, 라면, 국수 같은 업종 전체가 흔들린다. 결국 사업자는 마진 압박을 받고, 소비자는 가격 인상으로 돌아온다. 이 구조를 놔두면 시장은 알아서 정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정위가 칼을 세운 것이다.

공정위가 빠르게 움직인 이유, 그리고 시장이 남긴 숙제

이번 사건은 조사 속도도 이례적이었다. 공정위는 평균적으로 담합 사건 조사에 300일 정도 걸리는데, 이번에는 4개월여 만에 마무리했다고 했다. 담당 과장을 포함해 5명이 태스크포스를 꾸려 속도를 끌어올렸다고 한다. 이례적인 공개 브리핑까지 했다는 점을 보면, 정부가 민생 물가를 얼마나 예민하게 보고 있는지 드러난다.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사건을 보면 늘 비슷한 생각을 한다. 가격은 결국 시장이 정하는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누가 정보를 쥐고 있느냐에 따라 쉽게 왜곡된다. 특히 생필품은 더 그렇다. 밀가루는 그냥 가루가 아니라, 빵집 사장도 쓰고 라면 공장도 쓰고 동네 분식집도 쓰는 기반재다. 이런 품목에서 담합이 벌어지면 파장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깊다.

앞으로 남은 건 제재 수위가 아니라 재발 방지다. 과징금을 크게 때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내부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공급가격과 물량이 투명하게 결정되는지, 정부가 감시를 계속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이런 사건은 한 번 터졌을 때 강하게 끊어내지 않으면 다음에도 반복된다. 밀가루 사건이 그걸 다시 보여줬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